일상

2024 Film Festiv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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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에서 얻은 것과 잊을 것

연말과 연초는 학회의 계절이다. 송년회다, 신년 모임이다, 이런저런 약속들로 한 해의 끝자락이 북적이지만, 몇몇 학회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가볼 만한 가치가 있다.

그중에서도 전안부학회의 꽃, 필름 페스티벌은 늘 기대하게 되는 학회다.

이번에는 아산병원에서 열렸다. 병원의 웅장함에 한 번 압도당하고, “프리미엄 필름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에 다시 한 번 멈칫했다.

학회 이름에 웬 “프리미엄”인가 싶었는데, 전공의 선생님들의 참석이 줄어들 상황에서 개원의 선생님들을 겨냥해 좀 더 풍성한 구성을 한 것 같았다. 약간은 과한 이름이었지만, 중요한 건 결국 내용 아니겠는가.

어차피 까먹겠지만 생각나는 내용을 좀 적어보면…


각막 이상증: 자주 만나지 않으면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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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eenshot

외래에서 가끔씩 만나는, 그것도 매우 드문 각막 이상증 환자들은 전문의 시험 공부할 때 책 속 삽화에서만 보던 질환이다.

유병률이 낮아 자주 볼 일은 없지만, 그렇다고 없는 건 또 아니다. 문제는 자주 보지 않다 보니 막상 마주쳤을 때 치료 계획을 명확히 설명하지 못할 때가 있다는 점이다.

“이게 각막 이상증이구나”까지는 알겠는데, “그다음엔 뭐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간다.

후부다형각막이상증
후부다형 각막이상증PPCD

이번에 발표된 후부다형각막이상증 사례는 그러한 고민을 다시 일깨워줬다. 상염색체 우성으로 유전되며 부모 중 한 명이 해당 질환을 앓고 있다면 자녀에게 전해질 확률이 50%. 이건 알고 있던 내용이다.

다행히 대부분은 무증상이거나 치료가 필요 없는 경우가 많다지만, 간혹 예외가 발생하기도 한다니 정말 그런 경우를 가지고 오셨다…

환자들에게 경과 관찰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발표자의 말이 마음에 남았다.

“대부분”의 함정에 빠지지 말자.


헤르페스 각막염과 그 주변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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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페스 바이러스 각막염

학회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주제 중 하나는 헤르페스 각막염이다.

진료실에서 의외로 많이 만나지만, 문제는 교과서처럼 명확히 보이는 사례가 드물다는 것이다.

가지 모양 병변이 딱 나타나면 오히려 반갑다. “아, 이건 헤르페스다!” 하고 명쾌하게 진단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다. 대다수는 “뭔가 이상한데… 이게 맞나?” 싶은 애매한 증례들이다.

오주연 교수님의 발표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헤르페스 각막염”**은 이런 현실적 고민에 대한 직관적인 답을 제시했다.

  1. 진단이 맞는지 다시 확인하라. (항바이러스 치료 2주에도 호전이 없다면)
  2. 치료가 충분히 이루어졌는지 점검하라.
  3. 둘 다 맞으면, 헤르페스가 아닐 가능성을 고려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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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내장 약제로 인한 독성 각막염들

이어서 진행된 독성각막염 강의도 흥미로웠다.

독성각막염은 헤르페스와 비슷한 가지 모양 궤양을 나타낼 수 있는데, 이를 구별하는 것이 중요.

녹내장 파트에서 각막문제로 전안부로 의뢰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은데, 대부분 r.o 헤르페스.

하지만 생각보다 녹내장 약물로 인한 독성각막염인 경우를 많이 경험 했는데 이를 머릿속에 정리할 수 있어 좋았다.

조만간 관련된 좋은 논문이 있어 정리를 해볼까 한다.


개원의 선생님들의 한 수

이번 학회에서 기억에 남는 건 개원의 선생님들의 적극적인 참여였다.

한 선생님이 던진 날카로운 질문들이 발표자와 청중 모두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대학병원에 오는 환자들은 이미 개원가에서 몇 단계를 거쳐온 경우가 많다.

중요한 진단적 고민과 배제를 먼저 해주는 곳이 바로 개원가다.

대학병원에서 퍼즐을 맞추기 위해 고민할 수 있는 것도 개원의 선생님들이 미리 퍼즐 조각을 다듬어 주기 때문이다.

이번 학회에서 그런 현실을 다시금 실감했다.


반복의 중요성, 그리고 망각의 자연스러움

정리하다 보니 작년 학회에서 들었던 내용과 상당히 겹친다는 걸 깨달았다. “이거 어디서 들어봤는데?”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사람이란 망각의 동물 아니겠는가. 알던 것도 잊고, 들었던 것도 흐릿해진다. 학회는 그런 점에서 반복의 중요성을 다시금 상기시켜 준다.

익숙한 내용을 다시 확인하고, 여기에 새로운 깨달음을 더하는 과정. 그런 반복의 장이다.

이번 학회에서도 얻은 건 많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잊었던 것들을 다시 꺼내어 복습할 기회를 가졌다. 그리고 그게 충분히 의미 있었다.

다음에도 비슷한 내용을 듣고, 아마 또 비슷한 깨달음을 얻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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