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시현상 고찰의 역사 – 이상한 것들이 보인다
- 내시현상(블루필드내시현상, 광시증, 섬광증 등) – 왜 나한테만 보일까?
- 내시현상 고찰의 역사 – 이상한 것들이 보인다
안녕하세요 안과전문의 송한입니다.
오늘부터 제가 준비한 새로운 시리즈를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제목을 붙이자면, ‘내시현상(Subjective Visual Phenomena)와 그 거장의 고찰’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초창기부터 “눈 감으면 보이는 빛”이나 “시야 한구석에서 이상하게 일렁이는 무늬”, “반짝이는 점들” 등등, 나에게만 보이는 시각증상에 흥미를 느껴 왔습니다.
한때 “이상한 증상?”이라고 생각했지만, 비주얼 스노우(Visual Snow), 비문증, 광시증 등으로 설명 가능한 것도 있고, 도무지 원인을 알 수 없는 묘한 현상들도 많다는 걸 알게 되었죠.
물론 기질적 문제(예: 망막, 뇌 병변)로 인한 병적 내시현상도 있습니다만, 막상 실제로는 ‘정상적인’ 내시현상이 훨씬 많다는 사실이 흥미로웠습니다.
그 덕분에 많은 분들이 “눈에 보이는 이 증상은 도대체 뭔가요?”라고 질문 커뮤니티에 물어보곤 하십니다.
요즘은 인터넷이 발달해서 정보를 찾기 수월해졌고,
“아 이거 정상적 현상이구나” 하고 안심하시는 분들도 많아요.(시리즈 첫 포스팅 참고)
다만 한편으로는, 정보가 많아지면서 오히려 불안과 걱정이 커지는 경우도 종종 봅니다.
아주 미묘한 빛무늬나 잔상이 신경 쓰여서 병원을 전전하시고,
‘이 원인을 꼭 알아내야 해!’ 하며 매일 시야를 예민하게 모니터링하게 되면,
그러다 또 새로운 이상(?)을 발견하고 스트레스 받는 악순환이 생길 수 있거든요.
이론으로는 설명 못 할 내시현상이 많다
내시현상 중 일부(예: 블루필드 현상, 비문증 등)는 어느 정도 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해요.
하지만 저도 실제로 진료하면서, “설명하기 어려운 내시현상”을 호소하는 분들을 꽤 만나게 됩니다.
우리의 눈과 뇌가 완벽하지 않아서, 가끔 잘못된 신호를 보내고, 잘못 해석하기도 하니까요.
대다수 사람들은 그런 미세한 오류를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만, 이미 비문증·비주얼스노우 등으로 시각에 예민해진 분들은 새로운 증상을 자꾸 의식하게 되고 불안해하실 수 있죠.
그래서 저도 이 문제를 깊이 파고들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어느새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가, 바로 이 내시현상의 ‘아버지’로 불리는 얀 에반 젤리스타 퍼킨예(Jan Evangelista Purkinje)와 헬름홀츠(Helmholtz) 같은 거장들의 문헌에까지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다만 당시는 학계 공식 언어가 독일어였던 터라, 직접 논문을 번역하고 읽어보는 데에 난관이 많았습니다.
군의관 시절 잠시 호주에서 지내게 되었는데, 5개국어를 하는 친구가 있어 같이 머리를 맞대어 봤지만 쉽지 않아 포기하고 말았죠…
하지만 요즘 시대는 AI가… 놀랍습니다.
제가 지난 1년간 gpt를 비롯해 많은 AI와 대화를 해왔고,
1년 전만 해도 막막했던 번역·정리 작업이, 지금은 AI의 도움으로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이걸 계기로, 저도 다시금 Purkinje 가 남긴 내시현상의 기록을 정독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Purkinje 어떤인물인가요?
퍼킨예는 19세기 체코 출신의 생리학자로, 조직학·생리학·약학·법의학 등 정말 다양한 분야에 족적을 남긴 ‘다재다능한 천재’였습니다.
• 퍼킨예 세포(Purkinje cells): 우리 뇌(소뇌)에 존재하는 독특한 형태의 신경세포
• 퍼킨예 섬유(Purkinje fibers): 심장전도계에 관여하는 섬유
• 지문 감식의 기초를 놓은 인물 중 한 명
체코 민족주의 부흥에도 큰 영향을 미쳤으며, 현지에서는 국민 과학자로 추앙받고 있죠.
그런데 이 모든 업적 이전에, “주관적 시각 현상 연구”가 퍼킨예 학문 생활의 시작이었습니다.
주변에 실험 기기가 거의 없었던 터라, 직접 눈을 관찰하고 압박하거나,
강한 빛을 쳐다보고 남는 ‘잔상(Afterimage)’을 기록하며,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다양한 시각 착각·패턴을 모으고 분류했죠.
이것이 나중에 신경생리학(Neuroscience)의 태동으로까지 이어진다는 점이 정말 놀라운 대목입니다.
시리즈 소개
“퍼킨예가 남긴 내시현상의 세계“
이번 시리즈에서는 제가 오랜 기간 관심을 가져온 내시현상을, 퍼킨예의 기록과 더불어 현대 안과학 분석을 곁들여 체계적으로 정리해볼 예정입니다.
• 압박을 가할 때 보이는 빛무늬(Pressure Figures),
• 깜빡이는 빛에서 비롯되는 스트로보스코픽 패턴(Stroboscopic Patterns),
• 망막혈관 패턴(Retinal Blood Vessels)이 왜 보이는지,
• 해가 뜨고 질 때 색 밝기가 달라지는 퍼킨예 시프트(Purkinje Shift),
• 그리고 헬름홀츠 등의 후속 연구도 함께 살펴볼 예정입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착시라 넘겼던 현상들이 사실은 매우 정교한 생리학적·신경학적 배경을 지닌다”는 것을 깨닫게 되실 겁니다.
동시에, 너무 예민하게 반응해서 불안이 커질 필요도 없다는 점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