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 그리고 반성
최근 왼쪽 눈에 아주 경미한 결막염이 생겼다.
충혈, 이물감… 뭔가 뻑뻑한 느낌. 매번 진료실에서 환자들에게 설명하는 그 흔한 상태였다. 좀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싶어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의사들이 종종 자기 몸에는 관대한 경우가 많지 않은가.
이삼일이 지나니 왼쪽 눈이 뭔가 초점이 안 맞고 흐려졌다. 굉장히 불편한데, 이거 정말 괜찮을까? 왼쪽과 오른쪽 눈을 번갈아 보면 왼쪽이 번지고 퍼져서 보이는 게 확연히 느껴졌다. 다른 건 모르겠고, 내일 수술할 때 지장이 없을까 하는 걱정이 들어 동료 선생님께 눈 좀 봐달라고 부탁했다.
역시나 그냥 약간의 결막염, 아무 이상이 없단다. 옆 검안실에 가서 굴절 검사도 하고, 쓰고 있는 안경이 잘 맞는지도 확인해보았다.
“교수님, 지금 안경에 왼쪽은 난시가 조금 덜 들어가 있네요? 일부러 이렇게 하신 건가요?”
지금 안경은 약 8년 전에 맞춘 그대로다. 그동안 불편 없이 잘 쓰던 안경이었는데…
“난시를 조금 넣어서 맞춰드려 볼게요.”
너무 잘 보였다. 이게 무슨 일인가? 급히 안경점에 가서 왼쪽 도수를 바꿨고, 잘 보이는 상태로 수술도 무사히 마쳤다. 며칠 지나 결막염도 나아지고, 바꾼 안경을 쓰니 왼쪽 눈의 불편감은 완전히 잊혀졌다.
문득 궁금해져서 예전 안경과 도수가 같은 다른 안경들을 꺼내 써 봤는데, 특별히 불편한 게 없었다. 별것 아닌 일이지만 많은 걸 느꼈다.
“이 시각이라는 감각은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구나…”
환자들이 며칠 전부터 갑자기 한쪽이 흐려 보인다며 오시면, 종종 백내장 진단이 내려진다. 사실 백내장은 천천히 진행되는 병이다. “며칠 전 무슨 일 있으셨어요?” 하고 물으면 “아니요, 그냥 안경 맞추러 안경점에 갔는데, 한쪽씩 가려 보니 한쪽이 잘 안 보이더라고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이 환자는 안경점에 가지 않았더라면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 채 1~2년, 길게는 수년을 그냥 지내셨을지도 모른다.
한쪽 눈씩 가려보며 알게 된 불편감은 한 번 신경이 쓰이기 시작하면 참기가 힘들다. 층간 소음이 한 번 들리면 더욱 예민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백내장 수술 후에 잘 보이긴 하는데, 뭔가 불편해요”라고 말하는 환자들이 생각보다 많다. 수술은 아주 깔끔하게 잘 되었는데도. 안구건조증 같은 흔한 이유도 많지만, 익숙했던 시각적 경험이 바뀌면서 생기는 불편감이 원인인 경우도 있다.
우리는 적응의 동물이라, 시간이 지나면 신경적 적응(Neuroadaptation)이 일어나 편안해진다. 하지만 변화가 지나치게 크면 적응이 어렵고 불편함이 계속될 수도 있다. 그래서 환자의 생활 패턴과 기존 시력 상태를 반드시 고려해 수술 계획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
누구에게는 잘 보이는 상태가 불편할 수도 있고, 또 다른 이에게는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요즘 AI에 관심이 많은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인간의 시각처럼 방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처리하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느껴진다. 눈이라는 복잡한 하드웨어로 수집된 정보는 사실 그 자체로는 질이 떨어진다. 이를 뇌의 시피질에서 기막히게 보정하고, 동시에 3D 렌더링하여 시각 정보를 학습하고 수많은 경험 데이터와 매칭해낸다. 현재의 GPU나 CPU 기술로는 구현할 수 없는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다양성(diversity), 병렬성(parallelism), 유연성(plausibility) 이 세 가지가 현 기술로는 절대 따라갈 수 없는 인간 시각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더불어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다.
나는 시각에 이러한 감정적 요소가 크게 작용한다고 본다, 그리고 이는 수술 후 만족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의술은 인술”이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수없이 많은 환자 중 한 명, 수없이 많은 수술 중 하나일지라도, 그들에게는 평생 단 한 번뿐인 중요한 순간일 것이다.
내가 그들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생각이 많아진다.
아직 배울 것이 많다.
어렵다…